김영남동지 서거

(평양 11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동지가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부전으로 2025년 11월 3일 12시 97살을 일기로 서거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은 이와 관련하여 3일 부고를 발표하였다.

부고에 의하면 김영남동지의 한생은 당과 수령의 품속에서 가장 고귀한 영예를 지니고 깨끗한 충실성과 높은 실력으로 혁명에 충실해온 빛나는 생애였다.

외래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하에 태여나 망국민의 아들로 수난속에 살다가 17살의 청년기에 해방을 맞이한 이후 김영남동지의 사회활동기는 조국의 부강과 영예,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의 줄기찬 행로로 아로새겨져있다.

민주건국의 초기에 외국류학의 길에 올랐던 김영남동지는 조국이 가렬한 전쟁을 치르고있던 1952년 7월에 귀국하여 당시 중앙당학교에서 당간부양성사업에 헌신하였으며 1950년대중엽부터 1960년대 전반기까지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면서 당의 대외적권위를 높이고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위업을 지지성원하는 진보적력량과의 사업을 활력있게 전개해나가는데 이바지하였다.

4년간의 외무성 부상직에 이어 1967년 9월부터 당국제사업부문의 중요직책을 력임하면서 김영남동지는 전당을 수령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며 세계사회주의운동력사에 오점을 남긴 반혁명세력들의 책동을 폭로분쇄하고 우리 당의 혁명적성격과 권위를 옹호보위하는 중대하고 어려운 사업에서 견결한 원칙성과 높은 실무능력을 발휘하였다.

1983년부터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의 중책을 지니고 근 20년간 세계무대에서 존엄높은 우리 국가의 권익을 옹위하는 정치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였다.

자주,평화,친선을 기본리념으로 하는 국가의 대외정책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함에 모든 지혜와 정력을 기울이던 나날에 공화국의 대외관계령역을 확대하고 사회주의건설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 조국과 인민이 준엄한 시련속에서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강국건설의 토대를 튼튼히 다져나가던 시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중임을 맡게 된 김영남동지는 당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었으며 국제무대에서 특유의 실력과 관록을 과시하여 공화국정치외교사에 뚜렷한 공적을 쌓아올렸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공화국최고주권기관의 책임일군으로 사업하는 기간 김영남동지는 국가사업전반이 새시대의 정확한 발전궤도를 따라 전진해나가도록 하는데서 혁명원로로서의 본분에 무한히 성실하였다.

김영남동지는 근 80년의 혁명활동기간에 항상 풍부한 지식과 높은 책임성으로 당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였으며 90고령을 넘은 시기에도 승리와 영광으로 일관되여온 우리 공화국의 긍지높은 력사를 후세에 그대로 전하기 위한 저술사업에 정력을 기울여 귀중한 저서들을 남기였다.

동지가 우리 당과 혁명,인민을 위하여 생을 다 바쳐 이룩한 공적은 승승장구할 우리 공화국의 장래와 더불어 더욱 빛날것이며 그 위대한 력사와 인민의 추억속에 김영남동지는 국가의 원로로 영생할것이라고 부고는 밝혔다.

김영남동지는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앞에 세운 공로로 하여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김정일훈장,로력영웅칭호를 비롯한 높은 급의 당 및 국가표창들을 수여받았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에서 고 김영남동지의 장의식을 국장으로 하며 김정은동지,박태성동지,최룡해동지를 비롯한 100명으로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국가장의위원회는 고 김영남동지의 령구가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안치되여있으며 고인과 영결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조객들은 4일 9시부터 19시까지 맞이하고 5일 9시에 고인의 령구를 발인한다고 밝혔다.(끝)

www.kcna.kp (202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