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을 혁명실천에 빛나게 구현해오시던 나날에 수많은 혁명일화들이 생겨났다.
1962년 1월 어느날 황해남도 신천군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군들과의 담화를 끝내시였을 때는 점심시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숙소로 가시기에 앞서 한 일군에게 녀성들이 나와서 선두차를 멈추어세웠던 곳이 어느 협동농장(당시)인가에 대해 알아보시였다.
일군으로부터 원암협동농장(당시)이라는것과 위대한 수령님을 뵈오려던 녀성들을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그이께서는 점심을 한끼 건느더라도 그들을 만나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식사도 뒤로 미루신채 그곳 농장으로 가시여 인민들의 소망을 풀어주시였다.
어느해 겨울에는 외투를 입지 못한 학생들을 보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다음날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농촌 어린이,학생들의 옷문제를 풀기 위한 문제를 토의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농촌 어린이,학생들의 옷문제를 풀기 위한 방도를 일일이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옷생산을 몸소 지휘하시여 전국의 모든 농촌 어린이,학생들에게 겨울솜옷이 무상으로 공급되도록 하시였다.
언제인가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잠시라도 휴식을 마련해드리고싶어하는 자기의 심정을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옛말에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있다고,이것은 신하가 일을 많이 하면 임금이 편안하다는 말인데 자신은 인민의 신하이고 인민은 우리의 임금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이러한 감동깊은 일화들은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전하고있다.(끝)
www.kcna.kp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