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
1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전대미문의 파쑈통치-〈총독정치〉》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 세기 불법비법의 방법으로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조선인민을 저들의 완전한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전대미문의 극악한 파쑈통치인 총독정치를 실시하였다.
1910년 8월 강도적인 방법으로 우리 나라를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합병조약》을 날조한 일제는 10월 1일부터 우리 나라에서 총독정치를 실시하였다.
일제의 《총독통치기구》는 악독한 《통감통치기구》를 개편한 극악한 군사봉건적통치기구였다.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의 폭발을 우려한 일제는 교활하게도 조선총독부를 설치하면서 이 기관의 식민지적이며 군사봉건적인 성격을 가리우고 그것이 마치도 조선봉건정부의 통치기구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듯이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조선봉건정부의 기본부서들인 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의 이름을 그대로 써먹는 기만행위를 감행하였다.그리고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인민에게 그 어떤 《선정》이라도 베풀수 있는 기관이나 되는듯이 떠들었지만 결코 파쑈통치의 포악성을 가리울수는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민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억압하는 폭압기구일뿐 아니라 군사봉건적강권으로 조선의 기본경제명맥을 지배하기 위한 강도적인 경제적략탈기구였으며 민족교육과 민족문화를 억압말살하기 위한 통치기구였다.
조선총독은 일본의 륙해군대장들가운데서만 임명될수 있었으며 행정,립법,사법,군사통수 등 실로 무제한한 권력이 총독에게 쥐여져있었다.
조선에서 모든 권력을 한손에 틀어쥐고 식민지통치의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한 력대 조선총독들은 하나같이 피비린내나는 식민지파쑈폭압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조선총독부에 도,시,군,면 등에 있는 행정기관들과 철도국,림시토지조사국,전매국,영림창,공업전습소 등 나라의 경제명맥을 틀어쥘수 있는 모든 경제기관들과 교육문화기관들까지 소속시켰다.심지어 조선총독부는 초등교육기관까지도 직접 자기 관할밑에 넣었다.
이렇듯 일제는 조선인민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생활과 관련된 크고작은 모든 부서들을 모조리 조선총독부에 소속시키고 식민지예속화정책을 악랄하게 실시하였다.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유리하게 지방행정기구도 개편하였다.일제는 지방행정기관들에 일반행정권,세금수탈권,경찰집행권 등을 줌으로써 지방장관들로 하여금 조선인민에 대한 무제한한 억압과 략탈을 제멋대로 감행할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조선사람은 일본법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뇌까리면서 일제는 총독정치의 실시를 담보하기 위해 폭압기구를 더욱 강화하였다.
《조선총독부 경찰관서 관제》를 발포한 일제는 조선주둔 헌병대사령관을 경무총관으로 임명하였다.그리고 각 지방들에 헌병분견소,헌병파출소,경찰서,경찰분서 등 폭압기관들을 전면적으로 배치하였다.
일제는 일본거류민들에게도 흉기를 쥐여주게 하였으며 지어는 소학교 교원들에게까지 군복과 같은 제복을 입히고 칼을 채워 조선사람들을 억압하는데로 내몰았다.
뿐만아니라 일제는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가장 야만적인 감옥제도를 세우고 조선인민에게 온갖 파쑈적폭압을 가하였으며 조선의 재부를 깡그리 략탈하고 노예적굴종만을 강요하였다.
일제의 총독정치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모든것이 일제에게 빼앗겼으며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노예로동과 비참한 죽음 등 불행과 고통만을 강요당하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 흘렀고 그 고통과 불행의 체험자들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 인민은 일제의 천인공노할 죄악의 력사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기어이 피의 대가를 받아내고야말것이다. www.minju.rep.kp(끝)
www.kcna.kp (2025.10.01.)